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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그대 있음에 내가 있으니

허생원은 젊은 시절 꽤나 돈을 모은 적도 있었지만 노름으로 다 날리고 집도 절도 없이 이곳 저곳을 떠도는 장돌뱅이다. 하지만 지난날 봉평 물레방앗간에서 마을 처녀와 보낸 하룻밤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무더운 여름 조선달과 봉평장을 파하고 가던 길에 충주집에서 애송이 장돌뱅이 동이와 시비가 붙어 손찌검을 한다. 그날 밤 하얀 메밀꽃이 소금을 뿌린 것 같이 산골 언덕배기를 수놓고 달빛마저 머금은 몽한적인 풍경 속을 세 사람은 장터로 떠난다. 이럴 때마다 허생원은 그 옛날 봉평에서의 애틋한 추억을 떠올린다.   냇가를 지나다 미끄러져 동이에게 업혀 그의 과거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동이가 왼손잡이인 걸 보고 아들임을 눈치채며 감회에 사로 잡힌다.   이효석의 단편 ‘메밀꽃 필 무렵’은 소설의 영역에서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서정적이고 시적인 표현으로 가슴 저미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헤어져도 마냥 슬프지 않다. 긴 겨울 밤 삭풍에 문풍지 해져도 사랑은 얼어붙은 심장에 따스한 피를 돌게 한다.   사랑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해답이다. 사랑은 천만 개의 언어와 백만 개의 꽃송이로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생명의 꽃을 피운다.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쳐도 사랑은 사랑을 위해 길을 터준다. 내 것이 아닌 것이 내 것이 되는 순간 타인의 존재가 내 삶의 무게와 합해진다. 사랑은 길이가 아니라 무게다. 가슴 뚫고 지나가는 바람이 허수아비라 해도 사랑은 추수가 끝난 들판에서 영원히 그대를 기다린다.   산다는 것은 허공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발을 땅에 굳건히 딛고 누군가를 위해 빛이 되고 그림자가 되는 일이다. 홀로 있어도 외롭지 않고, 함께 있어도 넘치지 않는 사랑으로 서로의 가슴을 끈으로 묶는다.   길을 떠났다. 빈자리를 채워 줄 무엇인가를 찿기로 했었다. 빈 손으로 돌아왔다. 연민과 그리움으로 가득 찬, 손에 잡힌 연날리기 줄을 놓아버리면 사는 것이 한결 자유로워진다. 뒤척임을 끝맺으면 별들이 어둠과 작별하는 새벽이 온다.   다시 시작 할 무엇이, 사랑할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행복인가.   존재하는 것들의 은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해도 그대 있음에 내가 있다면 나의 존재는 살아가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존재(存在)’는 정신적인 ‘존’(存)함과 물질적인 ‘재’(在)함을 포괄하는 단어다.   실존하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 존재는 실존의 객관과 주관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눈을 뜨면 다시 저녁이 오기를, 하루가 시작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픔으로, 기대도 희망도 없이 허무의 일기장에 낙서 하며, 삶의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묻는다 해도 살아있는 것만큼 소중한 기적은 없다.   강력한 부정은 긍정으로 가는 첫 단추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사실 만큼 정신적이고 물질적이며 살아가야 할 구원의 희망을 준다.   연결되지 않는 삶은 없다. 사랑은 모든 관계를 잇는 구심점이다. 내가 없으면 너도 없듯이 그대 사랑은 절뚝거리며 인생의 먼 길을 걷게 한다.   존재하는 것이 한 때 피어나고 사라지는 꽃잎 송별이라 해도, 메밀꽃 필 무렵 그대 손잡고 꿈결 같은 꽃 길 떠나는 사랑의 흔적으로 남는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하늘 그대 사랑 장돌뱅이 동이 가슴 저미

2025-03-18

[이 아침에]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 중에서   소로는호수의 아비새와 휠튼 호수가 외롭지 않듯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목장에 핀 한 송이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 자신도 외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수시로 생의 뒷덜미 치는 허무와 허리뼈 뭉개고 달아나는 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다. 태양도 달도 별도 생명 없는 것들도 슬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의 깃발을 생의 곳곳에 꽂는다. 고목도 강물도 비오는 날이면 슬픔의 눈물 흘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세월이 담쟁이 넝쿨로 온몸을 휘감으며 생채기를 남기는 동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대 품속에 있을 때도,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람을 견디지 못해 세월이 조금씩 바위에 흠집을 내는 동안, 그대 향한 사랑의 꽃다발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마른 꽃잎으로 시들어갔다.     고독은 혼자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독은 영어로 ‘Solitude’로 번역되는데 바른 표기는 못 된다. Solitude 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배제된 혼자 있는 상태로 명상이나 창작,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슬픔이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려져 있지 않다. 고독은 인생의 여백이다. 보이지 않는 생의 슬픔을 담는다.     여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워도 혼자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여백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슬픔을 잠재운다. 공백이 생략된 공간이나 단순히 비어있음을 뜻한 데 비해 여백은 공백이 주는 공간적 빈자리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디는 새로운 장을 펼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개나리 세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다. 사랑 듬뿍 주면 밝고 샛노란 꽃잎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것이다. 코발트빛 봄 하늘을 병풍 삼아 봄노래 중얼거릴지 모른다. 외롭지 않기로 했다, 더 사랑하고 껴안고 가까이 가기로 한다. 고독은 외로움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슬픔이라 해도 고독을 위해 생의 몇 부분을 남겨 놓는다.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행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프다 해도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크고 우람한 붓질을 남겨두리라. 그대 사랑이 지나간 여백의 화선지에 사랑의 꽃 한 송이 새겨두기로 한다.   이기희 / Q7 Editions 대표·작가이 아침에 존재 슬픔 동안 사랑 그대 사랑 담쟁이 넝쿨로

2023-04-16

[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존재하는 것들의 슬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대개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 사색하는 사람이나 일하는 사람은 어디에 있든 항상 혼자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독’ 중에서 소로는 호수의 아비새와 휠튼 호수가 외롭지 않듯 스스로 외롭지 않다고 말한다. ‘목장에 핀 한 송이 현삼이나 민들레, 콩잎, 괭이밥, 등에 그리고 뒤영벌이 외롭지 않듯’ 자신도 외롭지 않다고 주장한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다. 수시로 생의 뒷덜미 치는 허무와 허리뼈 뭉개고 달아나는 바람의 실체는 무엇인가.   생명 있는 것들은 아프다. 태양도 달도 별도 생명 없는 것들도 슬프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외로움의 깃발을 생의 곳곳에 꼽는다. 고목도 강물도 비 오는 날이면 슬픔의 눈물 흘린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세월이 담쟁이 넝쿨로 온 몸을 휘감으며 생채기를 남기는 동안 사랑을 하고 사랑을 떠나보낸다. 그대 품 속에 있을 때도,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서 있을 때도 외롭기는 매한가지였다. 바람을 견디지 못해 세월이 조금씩 바위에 흠집을 내는 동안, 그대 향한 사랑의 꽃다발도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마른 꽃잎으로 시들어갔다.     고독은 혼자 부르는 사랑의 세레나데다. 고독은 영어로 ‘Solitude’로 번역 되는데 바른 표기는 못 된다. Solitude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배제된 혼자 있는 상태로 명상이나 창작, 수행의 의미를 담고 있다. 고독은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슬픔이다. 소중한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그려져 있지 않다. 고독은 인생의 여백이다. 보이지 않는 생의 슬픔을 담는다.     여백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행복하지 못하고, 외로워도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여백은 비어있는 것들을 채워주고 슬픔을 잠재운다. 공백이 생략된 공간이나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는데 비해 여백은 공백이 주는 공간적 빈자리를 극복하고 고독을 견디는 새로운 장을 펼친다.   고독은 창의성의 원천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수많은 위인이나 예술가들은 고독의 강을 건너 위대한 성취를 이룬다.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도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고독을 통해 가지고 있던 페르소나를 벗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다고 설명한다. 고독은 ‘나 하나로, 나 혼자’라도 충분해지는 생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개나리 세 그루를 뒷마당에 심는다. 사랑 듬뿍 주면 밝고 샛노란 꽃잎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고 환한 미소로 다가올 것이다. 코발트빛 봄 하늘을 병풍 삼아 봄노래 중얼거릴지 모른다. 외롭지 않기로 했다, 더 사랑하고 껴안고 가까이 가기로 한다. 고독은 외로움은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다가가는 길이다. 존재하는 것들이 슬픔이라 해도 고독을 위해 생의 몇 부분을 남겨 놓는다.     고독은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동행자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아프다 해도 생의 마지막을 장식할 크고 우람한 붓질을 남겨두리라. 그대 사랑이 지나간 여백의 화선지에 사랑의 꽃 한송이 새겨두기로 한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존재 슬픔 동안 사랑 그대 사랑 헨리 데이비드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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